이스라엘 극우 정권 수립, 중동 화약고에 불 붙나?
(썸네일 출처: ⓒ Andrew Shiva) 오늘 <DEEP BYTE>는 낯선 나라에서 벌어진 낯선 사건을 다루려고 합니다. 바로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의 성지 방문 사건인데요. 미리 알려드리지만, 이 이슈 영 쉽지가 않습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그게 또 어지럽게 엉키고 꼬여서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는데요. 그래서 머리에 김이 나도록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저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그러니 잠시 숨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사건의 내용은 잠시 제쳐두고 사건의 영향부터 확인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곧장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이 사건으로 중동엔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사건 직후 로켓이 발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6626486&ref=A]됐고, 노골적으로 전쟁을 언급하는 위협 [https://www.haaretz.com/israel-news/2023-01-03/ty-article/.premium/hezbollahs-nasrallah-says-new-israeli-government-can-lead-to-regional-war/00000185-78d4-dfb6-a1a7-7bfc35fe0000] 도 있었습니다. 중동의 아랍 국가들은 거칠게 항의하고 국제 사회도 화들짝 놀라 황급히 대처하고 있죠. 정말 전쟁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장 중동에서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슈를 이해하려는 건데요.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전체적인 시야에서 이슈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번 사건이 실은 수십 년간 수많은 국가가 연루된 갈등에 다시 불을 붙이는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죠. -------------------------------------------------------------------------------- 사건: 벤-그비르 장관의 성지 도발 ⓒ 'The Times and the Sunday Times' Youtube지난 3일 이스라엘의 국가안보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Itamar Ben-Gvir)가 동예루살렘의 성지를 방문 [https://www.ytn.co.kr/_ln/0104_202301050215424042] 했습니다. 15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걸음으로 벤-그비르는 중동 전역을 뒤흔들고 국제 사회를 당황하게 했는데요. 장관이 사원을 둘러본 일이 어째서 이토록 큰일로 번지는지, 그 이유는 역사를 함께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 ⛰ 동예루살렘의 공동 성지: 문제가 된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는 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 성지로 받드는 장소입니다. 두 종교의 교리에 따르면 각별한 의미가 서린 곳인데다, 두 민족의 역사적인 감정이 켜켜이 쌓인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생각하기로 이곳은 선조들의 땅이자 선조가 쫓겨난 비극적 역사의 땅이고,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되찾은 감격의 땅입니다. 반면 이슬람교도에게 이곳은 치욕스러운 현실이 짓누르는 공간입니다. 수백 년을 성지로 기리며 살아온 민족의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유대인과 서구 열강에 빼앗겨 사사건건 통제되고 있다는 상실감이 배어 있는 곳이죠. * 🤝 불안불안한 타협: 이토록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공간이기에 이곳은 아슬아슬한 타협에 따라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성지를 포함한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는데요. 이스라엘은 성지를 독단적으로 관리하는 건 지극히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주변 이슬람 국가가 혈안이 돼서 달려들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타협 지점을 찾았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역을 실효 통치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성지만은 이슬람 재단에 관리 권한을 이양했죠. 타협에 따라 성지 내부에선 이슬람교도만이 예배를 하고, 다른 교인은 성지에 출입하더라도 종교의식을 벌이진 않기로 해왔습니다. * 🩸 유혈 갈등의 역사: 하지만 아슬아슬한 균형은 조그만 움직임에도 피바람을 불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선 극단적 유대교 세력이 성지 전역을 통제해야 한다고 나서고,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 민족은 성지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스라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는데요. 이 긴장 속에서 동예루살렘 성지는 수차례 유혈 갈등의 불씨가 됐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죠. 당장 두 해 전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와 이스라엘군이 무력 충돌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068591]에 이른 것도 이스라엘 경찰이 성지의 알-아크사 모스크에 들이친 게 발단이 됐습니다. 벤-그비르가 성지 방문 직후 남긴 트위터. 그는 "성전산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라고 주장했다. ⓒ 'itamarbengvir' twitter * 😡 트라우마를 건드는 행보: 이러한 역사 속에서 벤-그비르 장관의 방문은 도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성지에 방문하고 성지가 유대교도에게도 열려야 한다 주장하는 건, 지금까지의 타협을 깨고 이스라엘이 성지를 통제하겠다는 시도로 읽힙니다. 그러니 벤-그비르는 팔레스타인과 아랍 세계의 트라우마를 깊숙하게도 자극한 셈입니다. 그 짧은 산책으로 말미암아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억, 나아가 이스라엘-아랍 전쟁의 트라우마가 의식의 전면으로 떠올랐죠.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건 강렬한 기시감입니다. 2000년 리쿠드당의 총재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성지 내 알-아크사 모스크에 방문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259857.html]한 사건을 이르는 건데요. 이 사건이 발단이 돼 팔레스타인 민족의 전국적인 봉기, 제2차 인티파다(Intifada)가 벌어졌습니다. 당시 수많은 이들이 죽고 피 흘려야 했죠. -------------------------------------------------------------------------------- 국내정치적 맥락: 네타냐후의 극우 정권 수립 작년 12월 출범한 이스라엘의 제37대 정부. ⓒ 'The Prime Minister of Israel' Facebook이 사건이 더욱 걱정스러운 건 이게 장관 한 명의 일탈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인 것 같은데요. 향후 몇 년간 이스라엘의 권력은 벤-그비르와 같은 극단주의자와 민족주의 연합의 손에 놓입니다. * 🫵 극우의 선봉장?: 사실 벤-그비르의 행보는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그가 과거 내비친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를 한두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국수주의자이자 인종주의자 [https://www.voanews.com/a/6851259.html]라는 수식어가 적절할 겁니다. 벤-그비르는 총선 과정에서 경찰이 팔레스타인 시위자에게 마음껏 발포해도 된다는 둥의 발언으로 이목을 산 인물입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인종주의를 자극하고 테러 단체를 지원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죠. * 👤 연정의 한 기둥: 뜨악한 이력의 벤-그비르, 그는 '유대인의 힘(Otzma Yehudit)'이라는 정당의 대표기도 한데요. 이 극우 정당은 이스라엘의 의회, 크네세트(Knesset) 120석 중 6석의 의석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총 64석을 모아 세워진 이번 이스라엘 정권의 한 축이기도 하죠. 정권은 '유대인의 힘'이 가진 6석 없이 과반(60석) 의석을 구성하지 못하는 만큼, '유대인의 힘'과 그 대표 벤-그비르는 이번 정권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개 장관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지향을 결정할 수 있는 핵심 파트너라고 보아야 하죠. * 🫂 이스라엘의 극우 연정: 그러니 벤-그비르의 도발은 이스라엘의 정치권력이 어떤 성향의 세력으로 넘어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작년까지 이스라엘 정부는 좌우의 다양한 성향의 정당이 연합해 꾸려졌습니다. 유대교 중에서도 특히나 반동주의적이고 극단적인 초정통파에 대항한 연합이었는데요. 심지어 이 연립정부에는 역사상 최초로 아랍계 정당이 참여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 정권은 얼마 못 가 내부의 입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무너졌고, 작년 12월 새로운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이번 정부는 이스라엘의 정치사에서 가장 극우적이고, 가장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고 평가받습니다. 반민주주의적인데다,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이고, 또 종교 근본주의적인 정당 여럿이 힘을 합쳤죠. 이스라엘 극우 연정의 지도자가 된 네타냐후. ⓒ 'The Prime Minister of Israel' Facebook * 👑 돌아온 네타냐후: 이 연합을 성공시킨 이는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입니다. 그는 15년 동안이나 권력을 거머쥔 최장수 총리인데요. 2021년에 본인의 부패 스캔들이 불거지고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면서 실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돌아왔죠. 그는 스캔들로 인해 중도 자유주의적인 정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극우 세력의 힘을 빌려 [https://www.nytimes.com/2022/12/22/world/middleeast/israel-netanyahu-government.html?action=click&pgtype=Article&state=default&module=styln-israel-election&variant=show®ion=MAIN_CONTENT_1&block=storyline_top_links_recirc] 정권을 되찾았습니다. * ⚠️️ 우클릭 이어갈 이스라엘: 네타냐후 본인부터가 아랍과 팔레스타인에 강경한 입장인데요. 그래도 그는 장기 집권을 이어갈 만큼의 현실적인 감각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지도 모릅니다. 네타냐후는 권력을 잡기 위해 극우 세력에 손을 내민 대가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합니다. 국정에 극우 세력의 지향이 더 노골적으로 반영된다는 뜻입니다. 네타냐후의 이번 집권이 과거보다도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는 예측이 제기되는 까닭이죠. -------------------------------------------------------------------------------- 국제정치적 맥락: '두 국가 해법'의 거부 정권의 극우적 행보는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적인 권한을 약화하려는 시도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데요. 국제 사회가 특히나 걱정하는 부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기나긴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에 이르기를 기대하는데요. 그러기 위한 유력한 방법론 '두 국가 해법'을 네타냐후 연정은 정면에서 부인하고 있습니다. * 🇮🇱🇵🇸 세계의 화약고, 이-팔 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다툼은 20세기부터 이어졌습니다. 두 민족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며 수많은 피를 뿌렸죠. 유대인들은 지금 이스라엘이 위치한 지역이 선조들의 고향이고, 되찾아야 할 땅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국, 영국 등 서구 열강의 힘을 빌려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확장했죠. 이 땅의 선주민인 팔레스타인 민족에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내쫓는 격이었는데요.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주변 아랍 국가들 입장에서도 이스라엘의 건국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가 수차례 맞부딪쳤고, 팔레스타인 독립 세력은 이스라엘과 끊임없는 무력 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종교와 민족, 영토 문제가 한데 엮여서 쉽게 풀 수 없는 난제가 돼버렸죠. 1993년 제1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됐다. 차례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왼쪽),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가운데), PLO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오른쪽). * 📃 오슬로 협정: 이 끔찍한 분쟁을 해결할 희망을 보여준 게 바로 오슬로 협정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에 지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과 1995년 평화를 위해 겨우겨우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핵심은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각각이 독립적인 주권 국가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지내보자는 것이었는데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할양해 자치 및 독립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은 무력 투쟁을 중지하며 이스라엘의 건국을 인정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이 협정은 미국의 중재를 통해 이뤄졌고 또 평화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죠. * 💔 깨져버린 합의: 문제는 협정이 이행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의 종교 근본주의 세력은 협정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코앞에 팔레스타인이 독립국으로 세워지면 자국의 안보가 끊임없이 위협될 거라며 반대했죠. 결국 협정의 끝은 비극이었습니다. 협정을 성사시킨 이스라엘의 총리 라빈은 극우파에 의해 암살됐고, 뒤이은 선거에서는 리쿠드당의 네타냐후가 승리했습니다. 네타냐후의 집권과 함께 평화 프로세스는 사실상 중단됐죠. 2020년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현황 ⓒ United Nations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 🏘 정착촌 문제: 평화 프로세스는 유대인 정착촌 문제에서 가장 극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거쳐 무력 점령한 영토는 사실 아랍인들이 수백 년을 거주한 터전입니다. 이스라엘은 점령만으로 영토를 획득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땅을 완전히 유대 민족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아랍인들의 터전을 비집고 들어가 수백 개의 정착촌을 만들었죠. 무력 점령을 되돌릴 수 없게 못을 박으려는 심산이었습니다. 국제 사회가 명백히 불법이라 비판하는 방침인데요. 오슬로 협정 당시엔 정착촌을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인정하는 데 합의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협정 이후 네타냐후 정부는 오히려 정착촌을 늘려왔습니다. 협정을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데요. * 🧨 폭탄에 불붙이는 새 정부: 돌아온 네타냐후는 더욱 강경해질 걸로 보입니다. 네타냐후의 개인적 입장도 강경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의 파트너들입니다. 그의 파트너들은 대체로 정착촌 문제에서 극단적인 입장을 내세우고 있기에 네타냐후를 더욱더 몰아세울 텐데요. 단적인 예로 7석의 의석으로 연정에 참여한 '종교적 시온주의당(Religious Zionist)'의 대표 베자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는 불법 정착촌에서 태어났고 또 거주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정부의 정착촌 확대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그는 새 정부에서 서안지구 정착촌 정책을 감독하는 장관직에 앉았죠. 이처럼 네타냐후의 연정 파트너들은 새 정부에 참여하는 대가로 정착촌 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관철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dec/28/benjamin-netanyahu-government-makes-west-bank-settlement-expansion-its-priority] 해냈습니다. 연정 합의로서 네타냐후는 불법적으로 세워진 수십 개의 정착촌을 합법화하고 나아가 점령지를 합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전망: 관련국의 반응은? 네타냐후 정부의 행보는 중동과 국제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올 걸로 보입니다. 가깝게는 팔레스타인과의 직접적인 유혈 사태가 벌어질 걸로 우려되는데요. 동예루살렘 성지와 정착촌 확대 문제는 팔레스타인으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미 무력 항의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에 이스라엘군이 대응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국지전으로 번질지도 모르죠. 나아가 중동 전체의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사이가 안 좋은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중재로 국교가 점차 정상화되는 분위기였는데요. 네타냐후 극우 연정의 행보는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 중동 아랍 국가: "아... 이건 아니지" * ✊ 팔레스타인 대의: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그건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랍 국가 입장에선 서구 열강을 업고 나타나 떡하니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이 곱게 보일 리 없는데요. 특히나 같은 민족인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놓여 있다는 호소는 오랫동안 아랍 국가와 대중의 감정을 강력하게 흔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에 맞서서 팔레스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팔레스타인 대의'가 중동 아랍 국가의 외교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죠. 좌측부터 바레인의 알 자야니 외무장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UAE의 알 나흐얀 외무장관. * 🙏 아브라함 협정: 하지만 냉엄한 현실에선 그 무엇도 국익을 앞서지 못하는 법. 2020년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161]은 팔레스타인 대의가 허물어진 상황을 전적으로 보여줍니다. 걸프의 아랍 국가들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걸프 아랍 국가의 의도는 이란을 견제하고 경제적인 실리를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꿋꿋이 지지해왔던 아랍 형제 국가가 이스라엘과 손 잡는 걸 보며 팔레스타인은 배신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 💦 찬물 끼얹은 새 정부: 이런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의 새 정부가 난데없는 도발을 감행한 겁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친교를 맺겠다 결심한 아랍 국가들로 하여금 결정을 다시 고민하게끔 만들었는데요. 벤-그비르 장관의 성지 도발 이후 아랍 국가들은 격렬하게 반발 [https://www.yna.co.kr/view/AKR20230106018900079?input=1195m]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핵심 성지를 건드리는 건 그저 쉬쉬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카타르, UAE 등이 비판 성명을 냈고, 아브라함 협정으로 국교를 정상화한 UAE는 안보리 개최를 직접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아랍 국가들로선 국익을 생각해서라도 이 사건 하나로 이스라엘과의 국교를 완전히 끊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네타냐후 연정이 선을 넘는 행보를 이어간다면, 아랍 국가로서도 국내 여론과 아랍 지역의 분위기를 생각해 중대한 선택을 내려야 할지 모르죠. > 미국: "제발, 사고 좀 치지 마" 지난 3일 기자회견 [https://www.state.gov/briefings/department-press-briefing-january-3-2023/]에서 미국 국무부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이스라엘의 성지 도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 'U.S. Department of State' Youtube * 😰 당혹스러운 미국: 미국은 이 상황이 난처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어찌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처했는데요. 우선 이스라엘의 편을 들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에 이스라엘은 냉전기부터 이어온 동맹입니다.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를 넘어서 어느 정도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동맹으로까지 여겨지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사고를 치는 걸 언제까지고 감싸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이 아브라함 협정을 적극적으로 중재한 것도 결국은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이 후원하는 이스라엘이 중동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야 미국도 외교가 수월해지리라는 판단일 텐데요. 이스라엘 정부가 지금과 같이 처신한다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공공의 적이 될 공산이 큽니다. 이스라엘과 한편인 미국의 중동 정책은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겠죠. * ✋ "제발 그만해": 이런 난처함이 국무부 대변인의 기자회견 [https://www.state.gov/briefings/department-press-briefing-january-3-2023/]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네드 프라이스(Ned Price) 대변인은 미국이 동예루살렘 성지 문제에서 현상 유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는데요.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한사코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온 역사를 생각하면, 미국으로서도 최근의 사건은 맹목적으로 지지하기가 어려운 처지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대변인은 현 상황을 흔드는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행보가 중동 내의 긴장을 고조시킬 걸 깊이 우려한다고 전했습니다. 중동의 긴장을 다시 완화하기 위해 이스라엘 그리고 아랍 국가들과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죠. --------------------------------------------------------------------------------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화약고 옆에선 담뱃불도 위험하듯이, 중동에선 얼핏 사소해 보이는 결정도 폭발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인데요. 벤-그비르 장관의 성지 방문과 네타냐후 극우 연정의 수립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세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새로운 전쟁이 우리의 9시 뉴스를 채울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지구 반대편의 일이지만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겠습니다. BYTE+ 구독자 피드백오늘의 BYTE+ 콘텐츠는 어떠셨나요?BYTE+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씀해주세요!좋았던 점, 부족했던 점, 개선됐으면 하는 점 등을 적어주시면 최대한 빠르게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Google Docs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Vl9YUNeWBKfuOZD9OTfTjGFS0r2MZCXfBExlzhzLPXby_eg/viewform] Reference * 인남식(2021),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퇴진과 라피드-베네트 연립정부 등장의 배경 및 전망 [https://www.ifans.go.kr/knda/ifans/kor/pblct/PblctView.do?csrfPreventionSalt=null&pblctDtaSn=13804&menuCl=P07&clCode=P07&koreanEngSe=KOR&pclCode=&chcodeId=&searchCondition=searchAll&searchKeyword=%EB%84%A4%ED%83%80%EB%83%90%ED%9B%84&pageIndex=1] , IFANS FOCUS. * 인남식(2021),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의 배경 [https://www.ifans.go.kr/knda/ifans/kor/pblct/PblctView.do?csrfPreventionSalt=null&sn=&bbsSn=&mvpSn=&searchMvpSe=&koreanEngSe=KOR&ctgrySe=&menuCl=P07&pblctDtaSn=13788&clCode=P07&boardSe=] , IFANS FOCUS. * 인남식(2017),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추이와 향후 전망 [https://www.ifans.go.kr/knda/ifans/kor/act/ActivityView.do?csrfPreventionSalt=null&sn=13086&boardSe=pbl&koreanEngSe=KOR&ctgrySe=10&menuCl=&searchCondition=searchAll&searchBeginDt=&searchEndDt=&searchKeyword=&pageIndex=1] ,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 안승훈(201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두 국가 해결론(Two-State Solution)’에 대한 고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92899] , 한국과 국제정치, 제32권. * 홍미정(2019), 팔레스타인 주권을 박탈하는 트럼프의 기획 [https://papersearch.net/thesis/article.asp?key=3912544], GCC Issue Paper. * 홍미정(2003),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정착촌 확장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989683] , 지중해지역연구, 제5권.